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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신라 침공을 막아준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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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신라침공 계획

일본은 바다 너머 신라를 향해 후쿠오카에 이토성이라는 보급 기지를 만들었어요. 일본 군주는 남자 아이들이 신라어를 배울 것을 명령했고, 759년에는 3년 안에 500척의 배를 지을 것을 명령했어요. 이렇게 많은 배를 한 번에 지은 것은 외국과 전쟁할 때 뿐이었어요. 일본은 신라를 미리 공격하기 위해 침공 준비를 시작했어요.


일본은 왜 신라를 침공하려 했을까요?

당시 일본 사람들은 서기 200년에 삼한을 정복한 신공황후의 전설을 믿었어요. 그래서 백제의 동맹국으로서 663년 백강구 전투에서 패배한 역사가 부끄러웠어요. 신라와의 외교적 긴장이 계속되자 일본은 신라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어요.


침공계획 뒤에 숨겨진 한 인물의 야망

신라 침공 계획의 주도자는 당시 황제까지 통제한 절대권력자 후지와라 나카마로였어요. 나카마로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옮기기 위해 신라 침공에 열을 올렸어요. 나카마로는 동쪽 나라 발해와 쌍끌이 공격을 요청해 강력한 힘을 가진 신라를 진압하려 했어요. 당시 일본과 발해는 군사동맹 관계에 있었고, 발해가 전쟁 참여를 결정하자마자 신라를 향해 진격할 계획이었어요.


신라는 이미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었다

신라는 일본의 침공 계획을 알고 경주를 지키기 위해 대규모 모벌산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또한 신라의 대표 무기인 노를 사용하는 정예 병사들이 배치되었어요. 일본이 신라 정복을 계획할 때, 신라는 군사력을 모두 동원할 수 있도록 군사 개편도 진행했답니다. 


신라침공계획, 무산되다

발해는 왜의 신라협공계획을 거부해요. 750년대에는 신라와 발해의 교류가 시작됐었습니다. 초기 양국의 긴장과 대결 상태에서 우호의 관계로 변하는 시기를 상징하는 것은 국경선의 상호연락소 탄항관문이었습니다. 해동성국 발해와 신라는 서로를 한민족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발해는 일본의 요청을 거절하고 신라와 우방으로 지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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