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바람과 낡은 레코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

부엌에서 토마토소스를 졸이며 빌 에반스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으면, 문득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두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은 푸른빛을 내며 조용히 타오르고, 창밖으로는 멀리 한강의 물줄기가 가느다란 은색 실처럼 빛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말하자면 아주 잘 정비된 하이파이(Hi-Fi) 오디오 시스템을 닮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견고한 금속 케이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내부에서는 수만 개의 정교한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유려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흔히 ‘K’라는 접두사가 붙은 화려한 결과물들에 열광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음악을 가능케 하는 **’집요한 디테일’**이다.

한강 변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은 각자의 고립된 섬처럼 떨어져 앉아 있으면서도, 배달 앱으로 주문한 치킨을 나누어 먹으며 묘한 공동체적 리듬을 형성한다. 고독과 연대. 이 상반된 두 단어가 아무런 충돌 없이 공존하는 풍경은, 이 나라가 가진 가장 현대적인 매력 중 하나다.

전 세계가 한국의 영화나 음악,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를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마라톤 주자가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겨두고 내뿜는 필사적인 호흡 같은 것이다. 이곳의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결핍과 열망을 정교한 언어로 번역해낼 줄 안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국경이라는 딱딱한 벽을 넘어, 마치 공기 중에 퍼지는 커피 향기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가끔 나는 70년대의 낡은 가요 레코드를 찾아 듣곤 한다. 그 시절의 거칠고 투박한 사운드 속에는, 언젠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예언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 좁은 반도라는 물리적 제약은 오히려 이들의 상상력을 우주 밖으로 밀어 올리는 지렛대가 되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꽃이 더 짙은 향기를 내뿜듯, 이 나라가 발산하는 문화적 오라는 지독할 정도로 강렬하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맡기고 생각한다. 이토록 작지만 거대한 나라.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은 단순히 반도체나 자동차만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그 자체다.

맥주 캔 안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나는 이 나라가 가진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과, 그 이면에 흐르는 깊은 정적을 모두 사랑한다. 밤은 깊어가고,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무언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낼 것이다. 마치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배달되는 신선한 우유처럼, 이 나라의 진보는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경이롭다.

그것은 정말이지, 꽤나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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