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의 순환과 낡은 가디건 속의 심장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있으면, 가끔 거대한 시계의 태엽 장치 속에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 열차는 정해진 궤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고, 사람들은 마치 잘 훈련된 단거리 주자처럼 환승 통로를 질주한다. 나는 그 무표정한 속도감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토록 정교하게 돌아가는 세계의 부품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이 거대한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았다는 증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을지로의 낡은 노포에서 곰탕 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은퇴한 지 족히 이십 년은 되어 보이는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낡았지만 깨끗하게 다려진 가디건을 입고, 신문의 경제면을 아주 공들여 읽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나라의 진짜 힘은 화려한 마천루나 5G 네트워크 같은 것이 아니라, 저 노신사의 가디건처럼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성실함’**에 있다는 것을.

반세기 전, 이 땅은 그저 회색빛 먼지가 날리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풍경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폐허 위에서 마치 끈질긴 잡초처럼 일어섰다. 그들은 레이몬드 카버의 주인공들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보다 더 격정적인 리듬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나라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대해 생각한다. IMF 외환위기 때 금을 들고 나오던 줄, 혹은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도 사재기 하나 없이 서로를 지켜보던 그 차분한 눈빛들. 그것은 교육으로 습득된 예절이라기보다, DNA 깊숙이 각인된 어떤 고결한 질서에 가깝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는 그 정교한 마음의 메커니즘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 나라가 가진 잠재력이 아직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강남의 테헤란로를 걷다 보면 최첨단 AI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골목 안쪽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여전히 수십 년 된 세탁소의 스팀 다리미 냄새가 난다. 나는 이 극단적인 이중성이 좋다. 차가운 금속성과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완벽하게 블렌딩된 이 에스프레소 같은 나라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편의점에 들러 수입 맥주가 아닌 국산 수제 맥주를 집어 든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부한 풍미가 캔 안에 담겨 있다. 기술도, 문화도,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이곳에서는 날마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진화하고 있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생각한다. 만약 신이 내게 다시 태어날 장소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이 역동적이고도 다정한 반도를 선택할 것이다. 설령 그곳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우리는 결국 그것을 근사한 성장 서사로 바꿔버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아주 공들여 닦아놓은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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