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속도와 붉은 국물, 그리고 어떤 다정함에 관하여

맥주 캔을 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직하다. 나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필스너를 유리잔에 따르며,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응시한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유기체가 내뿜는 규칙적인 호흡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하필 이 반도 위에서 살아가느냐고.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잘 닦인 레코드판 위에 바늘을 올리듯 신중해진다. 사실,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애국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속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속도는 마치 잘 조율된 ‘베니 굿맨’의 스윙 재즈처럼 경쾌하다. 새벽 2시에 스마트폰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문 앞에는 갓 구운 빵이나 신선한 루콜라가 배달된다. 그것은 일종의 마법이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해 봐도 이런 식의 정교한 하이테크적 다정함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시스템이 인간의 욕망을 이토록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당연할지 몰라도 나에겐 꽤 근사한 일로 다가온다.

그리고 치안이라는 이름의 안온함이 있다. 늦은 밤, 카페 테이블 위에 고가의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풍경. 그것은 도덕의 문제라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보이지 않는 선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증거다. 마치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 주인공이 상실감을 느끼다가도 결국엔 일상의 견고함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 나라의 밤거리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음식은 또 어떤가. 맵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며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떤 실존적인 결핍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그들은 열정적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뜨겁다. 하지만 그 뜨거움 속에는 삶을 어떻게든 긍정하려는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K-팝이나 영화 같은 화려한 성취들도 훌륭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이 나라에 매료되는 지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전란의 폐허 위에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마침내 세계의 중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이들이 걸어온 궤적을 복기하다 보면, 잘 짜인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를 들을 때와 같은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물론 완벽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을 것’이라는 기묘한 낙관주의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나는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마신다. 차갑고도 짜릿한 탄산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이토록 역동적이면서도 안전하며, 세련되면서도 정이 넘치는 곳에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이나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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